독후감

한경혜님의 "오체투지"

Black Tea 2025. 2. 19. 21:56

 

< 오체투지 1장 >

최근 절운동을 시작했는데 <오체투지> 라는 책을 추천받았다.
"오체투지, 매일 천 배를 하는 경혜의 절 이야기"
작가 한경혜는 자신이 절을 통해 운명을 거스른 이야기를 <오체투지> 1장을 통해 풀어나간다.

작가는 태어날 때 부터 몸이 안좋았지만, 가정환경 때문에 인큐베이터에도 못들어갔다고 한다.
알코올 중독에 빠진 아버지를 뒤로하고 어머니와 동생 경아와 함께 아무것도 없이 사회로 나온 유년기 시절, 어머니는 자매 앞에서 이제 모든 것을 내려놓자 하였으나, 그때 작가는 어머니에게 필사적으로 살자고 애원했다.

새로 구한 일자리에서 재능을 보인 어머니의 노력 덕분에 16평 아파트까지 구해낸 유년기였지만 7살이 된 어느 날, 갑작스런 고통이 몰아치며 힘겹게 도착한 큰 병원에서는 "마음의 준비를 해야할 것 같다." 라는 소식을 듣는다.

다음날 작가와 어머니는 해인사 백련암으로 향한다.


"우리 인연이 여기까지인가 보다. 이 생에서의 인연은 여기까지인가 보다.
경혜야, 엄마랑 같이 죽자. 그 전에 할 일이 있다.

우리가 여태껏 살아온 동안에 대한 참회도 해 보고, 또 다음 세상에는 더 좋은 세상에서
더 좋은 인연으로 만나기를 기원하기 위해서라도 부처님께 절이라도 실컷 해보자.

힘들더라도 이 세상의 마지막이니 할 수 있겠지? 못해도 노력을 해보자... 응?"


절에 계신 성철스님은 삼천 배를 하지 않으면 뵐 수 없다.
작가는 성철스님을 뵙기 위해 3일에 걸쳐 절을 하고 성철스님과 만난다.

성철스님은 작가에게 "하루에 천 배씩 꼭 절하라" 라는 말을 남기고
무슨일이 있어도 작가는 매일매일 하루 천 배를 하게 되었다.

대학을 졸업한 이후, 1장의 핵심인 "만 배 백일기도" 를 시작한 계기이기도 하다.





만 배 백일기도는 이름만 들어서는 쉽지만 새벽에 일어나 몇시간 씩이나 같은 행동을 반복해야하는 꽤나 고된 일이다.

당연히 식단은 자극적이지 않고 소량만 먹어야 하며 물도 많이 마셔서는 안된다.

육체는 그만하라고 울부짖고, 정신은 희미해져 오직 고통뿐만이 인식되는 와중
한계가 찾아와 "절 하다 죽자" 는 각오를 한 작가이니만큼 사둔 약을 모두 복용하였지만, 어머니의 대처 덕분에 죽음을 면하게 된다.

정신의 한계를 경험한 이후 만 배 백일기도의 90일 정도 되는 날, 작가에게는 육체의 한계또한 찾아온다.
눈에는 환각이 보이고 이명이 정신을 나가게 한다.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은 상황속에서 작가는 부처에게 기도한다.

"나 좀 도와주세요.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아요. 지금 이렇게 하실 거였으면 차라리 첫 고비 때 죽도록 도와주셨어야죠."

이번에도 작가는 어머니의 도움 덕에 정신을 차리고, 한계에 굴하지 않고 남은 10여일동안 계속 절을 이어나가 만 배 백일기도를 해낸다.




작가는 어머니를 진심으로 고마워한다.
어머니는 작가를 장애인으로 취급하지 않았다.
오히려 정상적인 일반인보다 몇 배의 능력과 수고를 요구했다.

작가는 "운명을 거스른다" 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했다.
내용을 압축하여 적어 작가가 운명을 거스른 사례를 모두 적지는 못하였지만,
나는 실제로 작가가 수많은 운명을 거슬러 <오체투지> 를 쓴 작가가 있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절운동을 쉰 지 2개월 정도가 지났다.
이유는 절운동에 흥미가 떨어지고, 뛰는 데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려 했기 때문인데
어느새 뛰기만 하고있고 절운동을 하지 않는 나를 발견했다.

절운동을 쉬며 <오체투지>의 2장과 3장 또한 읽는 것을 멈췄다.

책상 한 켠에서 필기구의 받침대 역할을 하던 <오체투지>가 우연히 눈에 들어와, 절운동을 다시 시작하며 <오체투지> 의 2장을 읽었다.

<오체투지> 1장에서 작가가 향한 해인사에서 만난 성철스님은 작가의 여동생 경아와 티키타카가 좋았다.
경아는 다른 스님들도 힘들어하는 성철스님에게도 쉽게 다가가는 활동력과 사교성을 보였는데 장난도 많이 쳤다고 한다.
작가는 이런 경아를 보며 성철스님에게 죄송하단 생각이 들기도 하며 한켠으로는 부러운 느낌도 받았다고 회상한다.

아빠 없이 자란 환경에서 경아는 몸 아픈 언니의 지팡이 역할까지 해줘야 했다.
경아는 몸이 힘든 언니가 하교길에 놀림당하며 돌을 맞으면 경아가 바람처럼 달려들어 대여섯 되는 무리를 때려눞히곤 했다고 할 정도로 덩치와 체력이 좋았다고 한다.

그러던 와중 어느 해 추석 갓 지난 토요일, 경아는 성철스님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다른 아이들처럼 한복을 입어보고 싶다고.

그때 작가는 경아는 그저 평범한 여자아이 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 한다.

'한복을 꼭 입어보고 싶었지만 엄마가 힘드실까 봐 말은 못하고 추석 두 달 전부터 한복 가게 쇼윈도우를 보고 또 보며 소원을 빌었다는 경아'
- <오체투지> 101페이지


작가는 2장 초반, 장애인을 바라보는 '관심과 도움을 주는 마음' 과 '동정하는 마음'은 확연히 다르다고 말한다.
장애인이라고 열외시키거나 그러지 않고, 그저 일반적인 사람과 동등한 기회를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한다.




'진흙 속에 피는 연꽃', 2장의 제목이다.
진흙 속에서 화려하게 꽃을 피우는 연꽃이 될지, 그저 썩어 사라지는 잎이 될지는 본인의 의지에 달려있다고 한다.

작가의 어머니는 다소 독특한 가정 교육 방식을 채택하였다.

어느날 경아가 울 때 어머니는 경아의 울음 소리를 무시하고 집안일을 계속 했다.
경아의 울음 소리가 작아질 무렵, 어머니는 회초리로 사정없이 경아를 때렸다.
이유는 멈추지 말라고 계속 울으라 하기 위함.

"그렇게 울고 싶으면 밤낮 가리지 말고 죽을 때까지 계속 울어야지."

울음소리가 작아질 때면 어머니는 다시 회초리를 들고, 그러면 경아는 또 울었다.
그렇게 호되게 당한 이후 경아는 다시 울지 않았다고 한다.

이것이 잘못된 교육방식이 아니냐는 의견이 있을 수 있지만
작가는 참으로 건강하고 올바른 자식사랑법이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엄마의 교육방식. 어떻게 보면 모질기도 하지만, 그 당시 우리의 정서나 환경과 미래에 대해 그렇게 단호하게 하지 않았으면 스스로를 지켜나가고 함께 행복을 향해 전진하는 질서가 파괴되었을지도 모른다.
엄마의 교육은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 스스로를 책임질 줄 아는, 참된 행복의 밑거름이 되어준 것이다.'
- <오체투지> 111 페이지



1장을 읽으며 어머니가 좀 너무한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을 했었지만
2장의 어머니의 모습과 경아의 모습, 작가의 회상을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정이라는 단어를 일반화해 생각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작가가 말한 '일반적인 사람과 동등한 기회' 라는 말은 처음에는 단순히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없는 세상' 을 말한 줄 알았으나, 2장의 내용을 곱씹을수록 편견이라는 단어에 대한 고찰이 되었다.

이는 2장을 읽는 도중 교육방식에 대한 이의를 머리속에서 수없이 제기한 나에게도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생각한 근거는 2장 맨 마지막 문장이 말을 대신 해주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엄마의 자식사랑법이 참으로 건강하고 올바른 것이었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 증거가 바로 나니까 말이다.'

 

 

3장은 한경혜 작가의 중학교 시절로 돌아가 시작한다.

'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내고, 말은 제주도로 보내라' 는 말을 따른 어머니와 함께 서울에 있는 중학교에 입학하고 난 후 내면의 성장 과정과 느낀 감정은 초등학교때와 사못 다르다.

중1 당시 체력장에서 작가는 장애인인지라 참여하지 않아도 만점을 받을 수 있었지만, 자진해서 나서며 20점 만점에 20점을 받았다. 
만점을 받을 당시 선생님과 친구들이 박수를 쳐주었을 때, 함께 살고 있는 이웃들이 따뜻한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에 감격받아 눈물이 핑 돌고 자존감이 올랐다.

중2 때 부터는 성적이 올라 중3 때는 반에서 상위 성적을 차지하기도 했지만, 고등학교에는 진학하지 않았다.
시작부터 뒤쳐진 상태인데 고등학교에 가봤자 또래들을 따라잡기는 힘들어 보이고, 언니다운 언니가 되고싶어서.

각자의 인생에 있어 중요한 시기를 동생에게 도움을 주기는 커녕 방해가 되거나 도움을 받고싶지는 않았다고 한다.

검정고시 학원에 입학하겠다고 어머니에게 말씀드리자, 처음에는 놀랐지만 바로 존중해주시며 허락해주셨다고 한다. 이는 2장에서 내가 처음에는 의아하게 여긴 교육방식 덕분이다. 그 덕에 실랑이가 없었다고.

여하튼 한경혜 작가는 검정고시 공부를 시작한지 2개월 만인 4월달에 치러진 대입검정고시에 응시하여 전 과목을 합격했다. 고등학교에 다녔으면 1학년 1학기인 시점, 대학 진학 자격을 갖추게 된 셈.

작가는 사는 일이 '숨은 그림 찾기' 라고 생각한다.
숨은 그림을 하나씩 찾아가는 과정이 곧 꿈을 이루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만 배 백일 기도를 끝내고 휴식을 취하던 어느 날, 작가는 기회가 되어 실크로드 기행에 나선다.

실크로드에서 마주친 수많은 문화와 예술작품, 풍습은 작가가 자신이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인 지 알 수 있게 해줬는데, 이는 여행이 가진 진짜 의미를 작가가 알 수 있게 해주었다.

하지만, 작가는 캠코더에 찍힌 자신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는데, 다른 사람에 비해 일그러진 얼굴, 말할 때 돌아가는 얼굴과 정교하지 않은 발음은 자신이 다른 이와 얼마나 다른지 극명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한다.

여행에서 돌아온 작가는 충격을 받고 한동안 방에 박혀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작가는 결심한다. 만 배 백일 기도를 다시 하여 뒤틀어진 자신을 바로 세우고, 어두워진 마음의 눈을 다시 밝게 하자고. 이번 생에서 진정 윤회를 끝내고 싶어서. 몸이 주인이 되어버린 삶을 마음이 주인인 삶으로 돌려놓기 위해서.

8월 1일 시작된 만 배 백일 기도는 처음보다 더욱 험난했다.

3일차부터 몸이 굳기 시작하고, 30일 정도 되자 코피가 물 흐르듯 흘렀다.
어쩌면 첫 백일 기도보다 더욱 힘든 둘 째 백일 기도를 하며 작가는 자신을 격려한다.

'그래, 생명을 바꾸기 위한 일이야. 이 정도 고통쯤이야.'

첫 번째 백일 기도에서는 마음이 몹시 불편했지만,
사는 것조차 포기하고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조차 포기해서일까.
두번째 백일 기도때는 마음이 오히려 편했다고 한다.

80여일이 지난 시점에서 작가는 감정의 변화도, 희망도, 절규도, 포기도.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고 한다.
아픔, 괴로움, 삶, 죽음 이런 것도 다 떠나고, 생각이라는 것 없이 무덤덤하게 계속 절하는데만 집중하는 시점까지 온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작가는 점심식사 시간이 되어 무심코 창 밖으로 시선을 보내고있는데, 심장이 떨어져나가 내동댕이쳐지는 듯한 놀라움에 사로잡힌다.

형언할 수 없는 영롱함 가운데 몸과 심장이 없어져버리고, 주관도 객관도 없는 그런 경계속으로 마음이 집중되어 '나' 라는 존재가 사라졌다.

구경각.

불교에서 보살의 수행이 원만하여 궁극적이고 완전한 지혜를 얻는 경지.
20년 가까이 울고 부딪치고, 생명조차 포기할 정도로 몸부림치던 자신에게 부처님이 주신 최고의 선물이라고 작가는 회상한다.



'절이란 무엇일까?

절은 '저절로' 의 준말이다. 또 다른 말을 빌리자면 '그대로' 이다.
우리 일상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말 중에서 '일이 저절로 된다.' 는 말이 있는데 그냥 생각한대로 된다는 뜻으로 '절' 에서 나온 말이다.
그런데 실제 인간 세상에는 무엇인가가 '저절로' 되는 경우는 드물게 나타나는 게 사실이다.
왜냐하면 '업' 에 갈려져 있어서 '마장' 이 잘 끼기 때문이다.
이 마장은 모든 일, 심지어 고도의 수행 자리까지 따라다닌다. 그 '마장' 이라는 빚을 갚기 위한 가장 빠른 길이 바로 참회(절) 하는 방법이다.'
- 오체투지 177페이지 中

 

"경혜야. 너 자신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주인공은 바로 네 자신이야. (중략) 나는 네가 너 스스로의 주인공이 되어 살기 바란다."
- 오체투지 186 페이지 中, 어머니가 작가에게.



한경혜 작가는 마음의 준비를 끝낸 후, 사회에 나가게 되었다.

미대 과정을 수료하고 어느 날, 인연이 닿은 언니와 히말라야 등반에 도전한다.
그간 많은 고통을 겪어오고 신체를 단련해온 작가는 고산증과 같이 처음 느껴보는 고통과도 마주해보고
같이 온 언니의 상태가 악화되어 언니가 포기하기까지 했지만,
한경혜 작가는 역경을 이겨내며 정상에 도달한다.

그리고 내뱉은 첫 말은 자신 인생의 주인공이었다.


"야호! 한경혜. 넌 내 인생의 주인공이야!"



'히말라야 여정은 그야말로 인생을 닮아 있었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었으며, 눈으로 봤을 땐 힘들어 보이지 않던 곳이 실제 올라가기에는 너무 힘들었으며,
좀 괜찮아졌다 싶으면 금방 또 다시 힘들어지는 코스가 나타나곤 했다.
전혀 예측할 수 없었던 어려움도 인생에서처럼 우리의 무릎을 꺽이게 했다.'
- 오체투지 213 페이지 中



이후 작가의 집과 석사과정 이야기가 있었지만, '인생의 주인공' 이라는 워딩과 히말라야 정복이라는 이야기가 워낙 인상적이었기에 전체적인 후기 겸, 이 부분을 같이 풀어보고자 한다.

<오체투지> 는 해인사 백련암에서의 3천배, 그 이후 매일 1천배.
만 배 백일 기도와 히말라야 정복이라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나는 이 이야기가 단순한 이야기가 아닌,
자신의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주인공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그 주인공이 비극적인 운명을 거슬러 올라가는 과정을 담은 서사시라고 생각한다.

또한 작가의 의지와 투지, 마음가짐에 찬사와 존경을 표한다.
108배도 힘들어하고 그 또한 매일 하지는 않는 나에게 있어 매일 하루도 쉬지않고 1천배라는 활동은
엄청 거대한 벽이자 옆으로 비켜나가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지는 담장이니 말이다.

되돌아보니 '인생의 주인공' 이 나 자신인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초점을 맞추지 않은 인생은 사실 나로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문득 히말라야 정복, 만 배 백일 기도 와 같이 원대한 업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인생의 주인공으로서,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의 내가 된다면 그것이 나에게 주는 주인공의 화답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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